(6)요한나, 올가, 로자 마우러(1906~1947)
필자가 자료들을 수집하는 과정에 이미륵이 “로자 마우러” ( Rosa Maurer)라는 여성과 교제가 있었다는 지인들의 전언을 몇 차례 들은 바 있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저 같은 대학에서 오가며 만나는 가까운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미륵과 뮌헨에서 한 때는 가장 절친했던 사람(브루노 구텐존)의 여동생 마리 슈나이데빈 (Marie Schneidewin) 할머니가 1972년 가을 어느 날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일이 있었다. 특히 1920년대 말 경부터 이미륵은 자기의 두 오빠 - 브루노, 에두아트 - 들과 자주 만나면서 여행도 함께 다니는 사이였다고 하였다. 얼마 후 슈나이데빈 할머니에게 이미륵과 로자 마우러 사이가 어떤 관계였느냐고 물었더니 1972년 10월 12일자로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다. “미륵은 마우러라는 여성과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하고 별세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8일 뒤 (10월 20일) 오버아우도르프 (Oberaudorf)에 사는 로제 크놀 (Rose Knoll)이 슈나이데빈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도 이미륵과 마우러양과의 사랑 이야기를 가볍게 하면서 ”마우러양과의 사랑을 참고하시고“라고 괄호 속에 간단하게 언급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1972년 10월 28일) 이미륵의 뮌헨대학교 동물학과 동기동창인 안젤름 샬러 박사 (Dr, Anselm Schaller)와 대담을 나눌 때에도 샬러 박사가 “미륵에게 그토록 사랑하던 로자라는 여성이 있었는데 불행히도 난치의 병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고 전해 줬다. 필자는 이 말을 듣고 너무나 놀라 로자 마우러와의 관계를 더 자세히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후 안젤름 샬러 박사가 소개한 클라라 마이어 여사를 통해 미국으로 이민갔다는 로자의 둘째 언니 올가(Olga)의 주소를 알게 되어 1972년 11월 초에 편지를 보내면서 필자가 이미륵 자료를 수집한다고 전하고, 이미륵에 관한 여러 가지를 물었다. 필자의 편지를 받은 올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언니인 요한나(Johanna)가 그 편지를 읽고 대신 1972년 11월 13일자로 회신을 보냈으며,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이미륵은 여러 해 동안 귀한 손님으로 자기 집에 다녔다고 하며 “그는 우리 막내 동생인 로자와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사정으로 인하여 결혼은 못했습니다. Er war mit meiner jüngsten Schwester Rosa verlobt, doch eine Heirat war zur damaligen Zeit so gut wie aussichtslos.” 미륵은 로자를 그가 구상하는 단편소설의 주인공으로 구상하고 있었으며, 적당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아르츠바하에서 엘리자베트 샬크 일행과 산책하면서도 그녀들의 의견을 묻곤하였다. “그는 단편을 쓰고 있었으며 이 소설의 주인공, 즉 정열적인 소녀에 알맞는 이름에 관해서 우리들의 의견을 요구하였다.” (여원, 1959년 6월호, 344쪽). 요한나 언니는 당시의 상황을 그 편지 (1972년 11월 13일자 편지)에서 조금 더 상세히 전달해 주었다. “(......) 그 무서웠던 시기에 이미륵과 로자는 함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륵은 뮌헨에 살았고 로자는 우리와 함께 뮌헨 교외에 살았으며, 다니던 기차 노선도 폭격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고 로자는 1947년 2월 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당시에 뮌헨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륵에게 로자의 사망 소식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 로자 나이 21세에 이미륵과 사귀기 시작하여 1947년에 별세했다니 그녀의 나이 겨우 41세였다. 2차대전이 종전 될 무렵 연합군의 폭격으로 가옥들이 파괴되고 모든 것을 잃었던 격동기에 요한나는 뮌헨 근교의 어느 유치원에서 보모로 근무하다가 생활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 1952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악가로 활동하여 어느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자 1956년 동생 올가를 미국으로 데려왔다고 하였다. (1973년 2월 25일자 편지).
요한나의 편지를 받고 필자는 그녀에게 이미륵과 로자의 약혼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사진이나 여타 자료를 빌려 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녀는 그 당시의 시국사정으로는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아 그런 저런 자료를 전혀 가질 수 없었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이미륵과 로자와의 관계를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필자는 서울에 있는 김재원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 요한나와 올가의 말을 전하면서 그 내용을 확인하려 했다. 왜냐하면 김재원은 1929년부터 1934년 사이에 뮌헨에서 잠시 이미륵과 자취도 함께 했었고, 독일말도 이미륵으로부터 배운 바 있으며, 5년 간이나 아주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기 때문에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자 김재원으로부터 이 사실과 관련되는 회신이 왔었다. “(......) 로자 마우러와 약혼했다는 것은 믿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1940년 이전에 벌써 상당히 멀어진 것 같은데. 그 로자는 영문학이 전공인데 학교 선생을 하였든가요?” (1972년 12월 14일자 편지).
김재원은 1959년 6월 1일부터 4일까지 조선일보에 “이미륵씨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연재하여 글을 실었는데 그 중 6월 3일자에는 로자 마우러에 관해 가볍게 언급되어 있다. “ (......) - 로자 마우러 양 - 위에 잠간 말한 바와 같이 1929년대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이다. 그 후 그 사이가 어찌 되었는지 모르나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가까이 지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어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조선일보, 1959년 6월 3일자; 김재원 저: 여당수필집, 탐구당 1973년 참조).
뿐만 아니라 1973년에 발간된 김재원의 수필집 (여당수필집, 탐구당)에도 1959년 조선일보에 실었던 “이미륵씨의 생애”라는 글을 다듬어서 거듭 로자 마우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929년에 그를 만났을 때는 그는 ‘로자 마우러(Rosa Maurer)라는 영문학 전공 의 여학생과 극진한 사이로 나도 그 댁에는 몇 번이나 불리워 갔다. (......) 마우 러양의 아버지는 직업학교의 수학선생이고 어머니는 뚱뚱하고 온화한 부인이며, 위로는 요한나, 올가의 두 언니가 있었다. 지금은 다 근 60이 된 사람들이다. 이 ’로자‘양이 달마다 부모에게서 받는 용돈이 20마르크였는데 그 돈을 그대로 이 의경씨에게 가져오곤 하였다.” (김재원: 여당수필집, 탐구당, 1973, 127-128쪽).
이렇게 이미륵이 여자친구 로자의 지원을 가끔 받았다는 사실을 김재원도 옆에서 직접 보았거나, 아니면 본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알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로자의 그런 지원이 얼나마 오랫동안 지속돠었는지 그것은 알 길이 없다. 뮌헨대학 동물학과 동기 동창인 안젤름 샬러 박사의 전언에 의하면 이미륵이 박사학위를 끝내기 얼마 전에 지도교수인 빌헬름 괴취 (Wilhelm Goetsch)의 추천으로 록펠로우재단 장학금을 받아서 얼마간은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적어도 이렇게 장학금을 받으면서 살아갈 때에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재원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1927년부터 2년 간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장학금을 받아 1929년에는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로 기록되어 있다. (여당수필집, 탐구당, 1973, 127쪽). 장학금은 ‘록펠로우’ 재단으로부터인지, ‘알렉산더 폰 훔볼트’인지 확인하기 어려우나 박사학위 취득연도는 1929년이 아니라 1928년이 확실하며, 학위 논문 원본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하였으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해가 바뀌어도 필자에게는 이 로자 마우러의 문제가 궁금한 상태로 계속 남아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언니 요한나가 1973년 1월 5일에 보낸 로자에 관한 정보는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로자는 1927년 뮌헨대학교에 다닐 때 이미륵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은 약혼을 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히틀러 시대에는 공식적으로 약혼식을 올리는 일은 불가능하였습니다. 로자는 우리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고, 이미륵은 따로 혼자 살았습니다. 로자는 외국어를, 즉,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녀는 전쟁 중에 독일 육군부대에 복무하며, 이탈리아와 독일에 오가는 편지들을 검열하였습니다. 가슴아픈 얘기지만 그녀는 그 직책을 약 1년 후에 포기해야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로자는 복합성 경화증 (Multiple Sklerose)이라는 난치병에 걸려 약 13년 간이나 투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947년 1월말에는 폐렴까지 겹쳐 1947년 2월 7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요한나 마우러가 1973년 1월 5일 필자에게 보낸 편지).
이 외에도 로자와 이미륵이 가까웠던 사이라거나 혹은 약혼한 사이라고 보는 독일 분들의 증언이 몇 개 더 있으나 이 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더 구체적인 자료를 입수할 수 없었던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범우사발행 [책과인생] 200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