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겁내는 나는 4월 어느 날에 벌써 6월을 잘 보내자고 결심한 적도 있다. 지난 4월엔 그런 결심을 안 했는데 6월을 잘 보냈다. s씨 덕이랄 수 있다. 그로 해서 이미륵의 소설 <무던이>를 다시 읽으며 빠져들었던 것이다. s씨는 뮌헨에서 이미륵의 묘소를 십여 년간 돌보아온 전직 파독 광부다. 그가 6월 초에 한국에 온 건 이미륵의 묘소 영구 사용료 4400만원을 모금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s씨를 만나 약간의 관심을 표하고 뜻이 좋으니 길이 있으리라고 격려까지 했다. 국내에선 이미륵에 대한 인지도가 독일에서만큼 높지 않은 것 같다는 그의 말에 공감할 때나 격려의 말을 할 때 가당찮게도 나는 마치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무안 타려는 심사였다.
이미륵은 20세에 독일로 건너가 50세에 그곳에서 타계한,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다. 독일어로 쓴 이 소설은 발표와 동시에 독일 문단의 극찬을 받고 국정교과서에도 실렸다. 그는 동물학 박사, 동양학 교수였으며 ‘품위 있고 명민하고 따뜻하고 고요하고 쾌활하고 정직하고 유머감각 있는 이웃’으로 아직도 독일인에게 칭송 받는다고 했다.
나는 영화로 만들어진 <압록강을 흐른다>를 보고 온 날 1973년 판 그 소설을 꺼냈다. 싯누렇게 변한 책장들은 꿰맨 실이 늘어나 표지와 겉돌았다. 두 손으로 책을 받쳐 들었지만 읽지는 않고 뒤쪽 먼 데를 바라보았다. 프랑스 문화원의 지하 영화관이 있고 거기서 좀 더 뒤로 밀리면 전혜린이 있고 루이제 린자가 있고 더 밀리면 ‘글을 쓰고 싶다’고 무망하게 뇌던 스무 살의 내 혼잣말이 있었다. 그 어디쯤이었을까. 나는 번역된 이미륵의 글을 읽었다. 아, 하고는 한동안 저림을 견디었다. 혼잣말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후 그의 자장(磁場)은 이만큼에서도 벌써 저렸다. 70의 나이에도 여전히 저렸다.
<무던이>와 지내느라 6월 며칠이 쉽게 갔을 것이다.
열한 살의 저녁 어스름, 어머니는 한 손에 색색가지 송편이 가득 담긴 목판을 들고 다른 손에 상질의 가양주를 들고 군수 관사로 갔다. 나는 들떴지만 조용히 걸었다. 큰 다다미 방에 앉아 있을 때 후다닥 문이 열렸고 그 애가 얼굴을 디밀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문을 닫았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애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그 애는 키는 작지만 남자 반 반장이다, 교내 학예회 때 검은 신사복에 빨강 넥타이를 매고 제일 먼저 애국가를 부른다, 그 애와 내가 동 학년이라고 말할 때 으쓱했지만 더 할 얘기가 없어 풀이 죽었다. 어머니는 “쬐꾸만 게 넥구다이를 매여?” 한 번 물었다.
그 해 가을 소풍을 바닷가로 갔다. 나는 얕은 물에 들어가 있었다. “난옥아, 따갑지 않니?” 뒤쪽에서 물었고 내 이름의 끝 자를 잘못 발음했지만 나는 단박 그 애란 걸 알았다. 돌아보지 못하고 고개만 가로저어줬다. 아무에게도 그 애가 내 이름을 잘못 불렀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남녀 합반 수업이 있던 날, 선생님은 사내애와 여자애를 갈마들려 앉혔다. 내 왼편엔 착해 보이는 애가 앉고 오른 편엔 그 애가 앉았다.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라하고 나가버렸다. 나는 오른 쪽에 펼쳐놓은 그 애의 새 크레용에 넋이 빠져 있었다. 그것들은 아직 끝이 뾰족했고 통통했다. 여러 색깔이 묻어 꾀죄죄한 내 도막 크레용을 꺼낼 수 없었다. 밑그림 그릴 마음도 없었다. 그때 왼편에 앉은 애가 내 도화지에 연필 금을 몇 개 그은 건 내 정신을 끌러오려는 의도였을지 모른다. 순간 나는 착한 애의 도화지에 힘껏 연필을 눌러 북북 그었다. 애먼 애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오른편의 그 애가 ‘이거 써라!’ 하고 자기 크레용을 밀어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 애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난한 소작인의 딸 열 네 살의 무던이는 열한 살의 지주 아들을 좋아한다. 그 애와 혼인할 수 없는 이유를 귀띔하는 과부 어머니는 그 애 ‘우물이’가 자기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을 때 맨 아랫목 가장 따뜻한 곳에 제일 좋은 이불을 덮어 그 애를 눕히고 다음에 무던이를 눕히고 맨 윗목 추운 곳에 누워 잠든 아이들을 본다. 그 즈음에 신분이 다른 두 아이가 나누는 대화는 마음과 달리 안쓰럽게 겉돈다. 몇 해가 흘러 열일곱이 된 무던이는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가지만 “우물아!” 잠꼬대 한마디에 토라진 신랑은 출가하고 그 얼마 후 여인의 시체 하나가 강물에 떠내려간다.
떠내려가던 무던이가 내게 왔고 열한 살의 나는 열한 살의 꼬마신사를 연모하려했다. 다다미방 바닷물 크레용 넥타이 그리고 남자애의 고음 한마디가 잠깐 일렁이다 사라졌다. s씨는 6월 말에 떠났다. 그는 기대치를 약간 웃도는 모금액보다 이미륵에 대한 국내의 관심에 감동하고 갔다. 나는 어느 시월 잠깐 밟았던 뮌헨의 저녁거리를 떠올렸다. 낙엽과 함께 이미륵의 두루마기 자락을 날리게 하고 그 옆으로 무던이의 강을 흐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