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에곤 베른하르트 베너 (Egon-Bernhard Wehner)
1. 스웨덴의 배스테르빅
필자가 에두아트 구텐존을 만났을 때 이미륵이 1930년대 초반부터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독일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스웨덴에 사는 ‘에곤 베른하르트 베너’를 언급하였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그의 스웨덴 주소를 다음과 같이 적어 주었다: ‘Egon-Bernhard Wehner, S-59300 Västervik , Sibyllegatan 4, Sweden.’ 그 주소를 받고 필자는 즉시 1972년 12월 1일 설레는 마음으로 베너에게 이미륵 자료를 수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고 나서 3일 후 (12월 4일) 필자는 반갑고 놀라운 회신을 받았다. 그는 회답 서두에 필자의 편지를 매우 흥미있게 읽었다면서, 이미륵은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 한 명이며,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자료는 작가로부터 직접 받은《압록강은 흐른다》《아틀란티스 (Atlantis)》라는 잡지 몇 권,《슈팀멘 데어 푈커 (Stimmen der Völker)》라는 소책자, 함께 찍은 사진 몇 장과 수십 통의 서간문이 있다고 하였다. 그간 자신은 스웨덴에 이민 와서 몇 차례 이사 다니고, 또 부인이 편찮아 현재 자기가 집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신을 한번 만나러 필자가 스웨덴으로 오라는 제안을 했다. 그곳으로 오는 여비는 물론, 소요되는 일체 경비는 자기가 지불할 것이며, 독일에 사는 친구를 통해서 곧 송금하겠다고 하였다.
그 편지를 받고 필자는 약간 당혹스러웠다. 옛날에 이미륵과 얼마나 친했던 사이였으면 필자가 보낸 첫 편지를 읽어보고, 더구나 일면식도 없는 처지에, 즉각 그렇게 먼 곳으로 필자를 초대한단 말인가! 그 순간 이미륵이 실로 전설적인 인물이고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음이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실로 상상치도 않았던 놀라운 일이 갑자기 생긴 것이었다. 초기의 추적 작업으로는 순조로운 느낌이 들어 용기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뮌헨에서 알펜 엑스프레스 (Alpen-Express)라는 기차를 타고 코펜하겐, 헬싱보리―린트쾨핑 (Helsingborg-Linköping)까지 와서, 그곳에서 자기가 사는 배스테르빅 행―뮌헨으로부터 1,500km―기차로 환승하라는 설명까지 하였다. 어쩌면 다른 편리한 노선이 있을지 모르니 뮌헨의 일반 여행사에 가서 직접 문의해 보라고 하였다. 어느 기차를 타고 오던지 아무 상관이 없으니 배스테르빅으로 필자를 초대한다고 하였다.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들었으나 우선 그가 소지하고 있다는 자료들을 보고 싶은 초조한 마음도 있고, 또 베너의 진심이 느껴져 초대에 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여행일자를 조정하여 1973년 1월에 떠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자 1월 2일 독일 호프하임(Hofheim)에 사는 베너의 친구 아르투어 로츠사(Artur Rozsa)가 300마르크짜리 수표를 필자에게 보냈다. 지난 몇 년 간 필자가 지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꽃값으로 소비하면서 다녔는데, 이번에는 도리어 노자를 받아 가면서 이미륵의 친구를 만나러, 그것도 머나 먼 스웨덴으로 가게 된 것이다.
마침내 필자는 1973년 1월 10일 밤 10시 40분 기차를 타고 뮌헨을 떠나 다음 날(11일) 밤 10시 10분에 배스테르빅에 도착, 역 앞에 이미 예약되어 있었던 파크 호텔(Park-Hotel)을 찾아 갔다. 베너의 말대로 호텔 주인인 로딘 (Rodin) 사장은 독일어도 유창하고 아주 친절하였다. 다음 날(금)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마침 베너가 필자를 데리러 와서 우리는 극적인 상봉을 하였다. 거의 70을 바라볼 것 같은 그 노인은 건장한 체격에 무뚝뚝하게 보였으나 무척 인자하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택시를 타고 배스테르빅(Sibyllegatan 4번지)에 있는 베너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인 마야(Maja: 1891-1982)는 오래 전부터 병환으로 입원 중이라고 하여 마음이 언짢았다. 1973년 1월 10일, 이 날 필자는 베너와 단 둘이 매우 뜻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차를 함께 마시면서 의례적인 얘기를 서로 주고받다가, 그는 곧 이미륵과의 우정관계, 자료 등과 연관되는 얘기를 시작하였다.
자기는 1930년대 초반 자기 부친이 경영하던 뮌헨의 도자기 공장에서 친구 브루노 구텐존(Bruno Gutensohn)을 통해 이미륵을 알게 되어 자주 만나면서 친하게 지내다가 1949년 스웨덴으로 이민왔다고 했다. 뮌헨에 살 때엔 회계사 자격증도 갖고 있었지만 주로 도자기 제작 일을 하면서 시간이 나면 브루노, 이미륵과 함께 산행도 함께 하고, 여행도 같이 다녔다고 했다. 베너가 가까이 있을 때에는 그들이 얼마나 자주 함께 산행을 했는지 베너가 군軍에 입대해 있었을 때인 1939년 성탄절에도 이미륵이 베너와 함께 했던 등산 얘기를 편지에 써 보낸 일이 있다:
“가끔 나는 카이저게비르크(Kaisergebirg)에서 함께 보냈던 날들, 힌터슈타이너호(Hintersteiner See)를 끼고 함께 걷던 일(……), 우리들의 잡담, 자네가 나를 친절히 안내했던 그 때를 생각하고 있네.”
베너는 매사에 치밀하고 정확한 사람으로 보였다. 나중에 비교가 되었지만 베너처럼 자료들을 꼼꼼히 정돈해 놓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몇 개의 잡지들(일부는 나중에 더 찾아서 준다고 했음)과 신문에 실린 서평들도 물론 중요했지만, 이미륵으로부터 받은 편지 원본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더더욱 소중하게 보였다.
필자가 1984년까지 찾은 이미륵의 편지 원본을 모두 합치면 59통인데, (유고집 《이상한 사투리(Der andere Dialket)》에도 이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음) 베너와 부인 마야가 이미륵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모두 34통이다. 그 중에는 스웨덴으로 먼저 떠난 마야가 받은 것이 11통이나 된다. 베너가 수신인으로 되어 있는 편지 대부분은 독일에 있으면서 받은 서신들이고, 몇 통은 스웨덴에서 받은 것도 있었다. 그 즉석에서 베너는 필자에게 그 소중한 편지들을 아무 조건없이 기꺼이 넘겨주어 필자는 그것을 받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1999년 5월 말에는 슈투트가르트 옆 코른탈(Korntal)에 사는 헬레네 군데르트(Helene Gundert) 할머니로부터도 뜻하지 않게 그녀가 이미륵으로부터 받은 8통의 소중한 편지를 받게 되었다. 이 연재가 계속되는 동안 ‘헬레네 군데르트’는 별도의 단원에서 소개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가 《압록강은 흐른다》의 속편에 대한 얘기를 베너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1947년경에 속편원고가 거의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하였다.1947년 성령강림절 때 부인 마야에게 보낸 편지에도,
“지금 나는 첫 작품의 속편을 쓰고 있어요. 즉 유럽에서 보낸 내 생활 이야기 말이요. (……) 몇 주만 더 써서 작품을 끝내면 얼마간 어디로라도 떠나서 휴식을 취할 거에요. (……) 우리가 가끔 계획했듯이 이번 여름을 스웨덴에서 함께 보낼 수 있을 텐데(……)”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 원고를 받을 출판사도 정해진 것으로 보였고, 1949년 10월경에는 이미 원고가 교정단계에 있었던 것 같다. 이미륵이 1949년 10월 31일자로 베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여름학기는 시작됐고, 키이펜호이어(Kiepenheuer) 출판사는 원고를 재촉하고, 내 두 번째 책의 원고도 가끔 교정이 필요해”라는 문맥으로 미루어 원고는 분명히 거의 완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편으로 추측되는 그 원고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또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베너는 또한 이미륵과 함께 집필에 열중하였던 영, 독, 중 사전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1940년 12월12일자 편지에도 이미륵은 중국인을 만나면서 문법책과 사전편찬 준비를 하고 있음을 전해왔다.
“중국인들과의 대화는 참 좋았어. 자네가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없어 유감이네.”
그리고 원고정리도 베너에게 맡긴다고 하였다. 뮌헨에 있을 때 그는 이미륵으부터 서예도 배우고, 중국어도 오랫동안 배웠다고 한다. 준비했던 원고로 ‘중국어 교과서’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었는데 그 원고뭉치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당시에 출판예정이었던 키이펜호이어 출판사에 교정본이 보관돠어 있다가 아마도 전쟁 중에 폭격으로 소실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였다.
범우사발행 [책과인생] 2009년 9월호